김영삼 전 대통령, 한국정치사 '신기록제조기'…최연소·최초·최다

입력 2015-11-22 16:52  

22일 새벅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88년 일생동안 한국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1951년 장택상 총리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김 전 대통령은 1954년 만 25세의 나이로 자유당 후보로 출마,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5·6·7·8·9·10·13·14대 총선에서 잇따라 당선돼 헌정 사상 최다선인 9선 의원에 올랐다. 9선 의원 기록은 박준규 전 국회의장과 김종필 전 총리가 나란히 갖고 있다.

최연소(25세 당선)·최다선(9선) 기록은 우리 헌정사에서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최연소·최다 기록 행진은 국회의원 재임 중에도 계속됐다.

38세의 나이로 1965년 당시 최연소 기록으로 야당인 민중당의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44년간의 정치인생에서 여야를 넘나들며 총 5번의 원내총무, 7번의 당수(총재·대표최고위원)를 지냈다.

47세의 최연소 야당 총재 기록(1974년 신민당 총재 선출) 도 갖고 있다.

박정희 정권하인 지난 1979년 법원 판결로 신민당 당수 직무를 정지당한 데 이어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직서 제명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민중혁명으로 인해 미국이 물밑에서 지지하던 횅뭔澍襤?체제가 무너진 사태를 언급하며 한국 내에서도 이러한 전철을 밟지 말라고 경고한 게 발단이 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김영삼 의원에 대한 제명 방침을 정하자 여당 의원 159명이 징계안을 10분 만에 기습처리했다.

그때 남긴 유명한 말이 바로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었다.

전두환 신군부 출범 이후 3년간 가택연금을 당했으며 1983년 5월에는 23일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이며 신군부에 온몸으로 대항했다.

이밖에 1969년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로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개헌 반대투쟁에 앞서다 집 앞에서 괴한들로부터 초산테러를 당한 사건이나, 1989년 한국 정치인 최초로 소련을 방문해 한-소 수교의 물꼬를 튼 일 등은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있다.

1990년 1월 3당 합당을 거쳐 1992년 집권여당 최초로 치러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리했고, 그해 12월 치러진 제14대 대통령 당선되면서 32년의 군정을 끝내고 처음으로 문민대통령 시대를 열었다.

재임중인 1994년엔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했지만 당시 북한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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